하이에나는 우리에게 남이 먹다 버린 짐승을 해치우는 기분 나쁜 청소부로 낙인직혀 있다.
그러나 미국 버클리(캘리포니아)의 언덕에 있는 얼룩하이에나의 생태연구지에 가본 사람들은 다들 깜짝 놀란다.
하이에나가 근엄하기로 이름난 사자만큼이나 품위있고 아름답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이에나의 짙은 갈색 얼굴은 곰과 설표범과 바다표범의 얼굴을 섞어 놓은 듯 부드러우면서도
강하고, 친근하면서도 낯설다.
앞다리에 비해 뒷다리가 매우 짧아 먹이를 쫓아 멀리까지 달려가기에 유리하고,
가슴 근육과 목 근육이 대단히 발달해 있어 사냥개만한 몸집으로
아메리카들소만한 영양의 두개골을 단숨에 으스러뜨릴 수 있다.
가장 유명한 크로쿠타 크로쿠타(Crocuta Crocuta)라는 학명의 얼룩하이에나 !
맹수들이 먹다 남긴 썩은 고기를 먹는다는 소문과 달리 무시무시한 사냥꾼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먹성도 아주 좋아서, 뿔의 끝 부분만 빼놓고 살과 뼈, 발굽, 이빨은 물론이고 털까지도 먹어치운다.
얼룩하이에나 스물네 마리가 230kg짜리 얼룩말을 30분만에 먹어 치울수 있는데,
뼈를 많이 먹기 때문에 배설물이 분필처럼 희고 딱딱한 특징이 있다.
무엇보다도 얼룩하이에나의 가장 큰 특징은 호르몬의 구성비가 특이하다는 점이다
얼룩하이에나는 암컷 생식기의 독특한 생김새 때문에 오랫동안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어 왔는데,
그 관심이라는 것이 대개는 불유쾌한 것이었다.
12세기의 우화작가들은 얼룩하이에나를 보고 ” 수컷인 척하다가 금새 암컷으로 변하는 지저분한 짐승”
이라고 서술했으며, 맹수 사냥을 즐기던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하이에나는 양성동물이라고 했다.
1960년대에 이르러 과학자들은 암컷 하이에나의 생식기가 겉보기에만 수컷의 생식기와 비슷하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는데, 왜 암컷의 생식기가 수컷의 그것과 비슷한지를 설명해줄 생화학적
메커니즘에 대해서는 아직것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1980년대 중반에 버클리의 생물학자들이 얼룩하이에나의 내분기계와 행동을 연구하기 위해
어린 얼룩하이에나 스무마리를 아프리카에서 데려와 언덕 중턱의 큰 우리에 가둬놓고 길렀다.
하이에나들이 다 자라자 몸무게가 90kg에 육박했고, 인간의 손에 사육되기는 했지만 무리지어 생활한 탓에
선천적인 포악성도 잃지 않았다. 생물학자들은 우리에서 사육되는 하이에나와 아프리카에서
야생상태로 살아가는 하이에나를 비교 연구한 결과, 하이에나가 엄격한 계급 제도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지배계급은 무리를 이끄는 암컷과 그 자식들로 구성되는데,
이를테면,무리가 먹이를 먹을 때 제아무리 힘센 숫컷도 지배자인 암컷의 가장 약한 새끼에게 양보해야 한다.
1970년대부터 하이에나 떼를 따라다니며 연구한 생물학자들은 하이에나의 계급제도가 세습성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맨처음 여왕이 된 암컷의 후손들이 대를 이어 지배계급을 이루고, 하위 계급에 속한 하이에나의
후손들은 수 십년이 지나도 하위 게급에서 벗어 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만큼 하이에나의 세계에서는 예절도 계급도 제도만큼이나 변하지 않는다. 두마리의 하이에나가 만나면,
얼굴과 얼굴을 맞대지 않고 서로 반대 방향을 향해 놓여있는 구두 상자 속의 구두처럼 엉덩이와 얼굴을 맞댄다.
이때 하위계급의 하이에나가 한쪽다리를 들어 자신의 생식기를 상위 계급 하이에나의 입에 갖다대는데,
이것은 취약한 부위를 드러내 신뢰를 표현하는 동작이다. 그러면 지배 계급의 하이에나는
부하의 경례를 받은 장교처럼 뒷다리를 근엄하게 들어 하위 계급의 하이에나에게 가도 좋다는 신호를 보낸다.
이렇게 늘어진 생식기를 보여주는 것이 하이에나 사회생활의 핵심에 놓여 있지만,
그래도 암컷 하이에나는 어떻게 남성 생식기와 같은 생식기를 갖게 되었을까 ? 하는 궁굼증이 점점 커진다.
암컷이 여성 생식기를 지닌 채 태어나는 것은 태반이 테스토스테론의 지극을 차단시키는 결과이기도 하다.
포유동물은 모두 반대 성의 호르몬을 어느 정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임신한 암컷 또한
소량의 테스토스테론을 혈액을 통해 순환시킨다.
그러나 태반이 테스토스테론을 태아에게 해가 없는 여성호르몬의 한 형태로 변환시키기 때문에
테스토스테론이 태아의 생식기 발생에 영향을 미칠 수가 없다.
하지만 얼룩하이에나의 암컷은 평범한 암컷이 아니다. 어미 하이에나의 혈류 속에는
고농도의 안드로스테네디온이 순환한다. 이 호르몬은 난소에서 분비되는데 포유동물의 호르몬 중에서
아주 일반적인 호르몬이다. 내분비학 연구자들은 오랫동안 이 호르몬을 쓸모없는 비활성 호르몬이라고 간과해왔는데,
하이에나의 경우에는 이야기가 달랐다.
어미 하이에나의 태반은 어미의 호르몬을 차단하는 방패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테스토스테론의
선구뮬질인 안드로스테네디온을 흡수하여 그것을 다량의 테스토스테론으로 전환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암컷이 될 태아와 수컷이 될 태아 모두 수컷이 될 태아가 자기 힘으로 생산해낼 수 있는 남성호르몬의
양을 훨씬 넘어서는 다량의 남성호르몬에 노출되는 것이다.
더구나 얼룩하이에나의 임신 기간은 다른 하이에나보다 훻씬 길러 110일 정도나 된다.
이것은 하이에나보다도 덩치가 훨씬 큰 사자보다도 이주일이나 긴 기간이다.
이렇듯 긴 임신 기간 동안에 암컷이 될 태아가 남성적인 생식기를 갖게 될 뿐만 아니라 암수 태아 모두 어미의 뱃속에서
성장을 한다. 너무 많이 성장하여 태어나는 바람에 어미의 출산기관을 따라 내려오면서 어미의 클리토리스를 찢고
세상으로 나오는 경우도 있다. 새끼 얼룩하이에나는 근육이 발달되어 있고
이빨이 가지런히 나 있는 상태에서 두 눈을 뜨고 태어난다.
이 또한 갓 태어난 포유동물로서는 상당히 특이한 점이다. 어미의 뱃속에서 테스토스테론의 영향을 받으며 자라다가
공격을 감행할 수 있는 성숙한 몸으로 태어나기 때문에 얼룩하이에나는 태어나자마자 끔찍한 일을 저지르기도 한다.
갓 태어난 새끼들은 어미의 젖꼭지부터 찾는 것이 보통이지만, 갓 태어난 하이에나는 함께 태어난 형제의
목덜미부터 찾기 때문이다. 갓 태어난 새끼가 함께 태어난 형제를 죽이도록
잔인한 행동을 함에는 전적으로 테스토스테론의 영향 때문인 듯하다.
그러나 새끼 하이에나가 성장함에 따라 호르몬 분비와 행동양상의 관계는 더욱 복잡해진다
. 새끼 하이에나는 암수 모두 혈액 속에 고농도의 남성호르몬을 지니고 있지만 암컷이 수컷보다 훨씬 거칠고
활동적인 놀이를 즐긴다.
새끼 암컷이 성적으로 성숙하여 혈중 테스토스테론의 농도가 수컷보다도
낮아질때도 지지 싫어하는 성격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렇듯 암컷이 일생 동안 공격성을 잃지 않는 것을 보면,
암컷 하이에나의 성격 형성에 테스토스테론이 아닌 다른 요소가 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듯하다.
그것은 테스토스테론의 선구물질인 안드로스테네디온일 가능성이 높다.
암컷 하이에나는 혈중 안드로스테네디온의 농도가 높은데, 이 안드로스테네디온은 뇌에 테스토스테론과
유사한 작용을 할 수도 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다른 포유동물의 암컷들이 공격성을 띠는 이유 또한
밝힐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을 포함한 영장류의 암컷들은 혈중 안드로스테네디온의 농도가 상당히 진하다.
어쩌면 그 때문에 혈중 테스토스테론의 농도가
남성들의 십분의 일밖에 안 되는 여성들이 특정 상황에서 엄청난 공격성을 띠게 되는 것일 수도 있다.